리만머핀 서울은 확장 이전한 한남동의 새로운 공간에서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래리 피트먼(Lari Pittman)의 개인전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 Opaque, Translucent and Luminous》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열리는 작가의 첫 개인전으로, 2017년 둥지를 튼 안국동 갤러리에서 한남동의 약 70평 규모 공간으로 이전한 리만머핀 서울의 2막을 알리는 개관전이기도 하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건축사사무소 에스오에이(SoA, Society of Architecture)가 리노베이션을 맡은 한남동 갤러리는 1, 2층의 전시장과 조각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야외 테라스로 이루어져 있다. 래리 피트먼의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은 대도시에 대한 오마주로, 글로벌 팬데믹의 영향으로 불안정해진 도시 생활에도 불구하고 대도시가 지닌 활력과 역동성, 중요성을 재확인하는 일련의 신작들을 전 층에 걸쳐 소개한다.
수십 년간 수행되어 온 피트먼의 작업은 인간 본성은 물론 정치사 및 신화의 구축, 사회문화적 관계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을 반영한다. 능숙하게 중첩된 기호와 상징적 도상들, 다양한 화법과 풍부하고도 정교한 패턴이 돋보이는 그의 독특한 시각적 미학은 피트먼을 동시대 가장 중요한 회화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피트먼은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위해 주로 서양의 역사와 문화 병리(cultural pathologies)를 살피던 기존의 시선을 공통의 전지구적 심리를 폭넓게 진단해보는 것으로 확장시킨다. 지난 2년 간의 집단적 영향을 고려한 그의 신작은 현 상황은 물론 낙관적인 또 다른 현재나 미래에 대한 실행 가능한 대안을 그려내기 위해 예술을 이용한 것으로, 예지적이고, 긍정적이며, 활기 넘친다.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은 전시명에 담긴 세 가지 개념을 순차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작품들을 통해 인류 역사의 결정적 무대가 여전히 전 세계 대도시에서 펼쳐지고, 최근 도시 생활의 어려움이 두드러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방보다 도시가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함을 입증한다. 이에 걸맞게 작품의 상당수가 건물 위에 올라 앉은 또 다른 건물, 경쟁하듯 솟아 오른 마천루 사이를 가로지르는 다리, 중세부터 빅토리아 시대, 산업혁명기부터 후기모더니즘에 이르는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로 가득 차 있다. 또한 다른 작품에서 비둘기, 제비, 찌르레기처럼 보이는 새들과 캔버스 곳곳에 가냘픈 다리와 집게발을 뻗은 유사 곤충의 도시 생명체가 묘사되기도 한다.
알(egg)은 피트먼의 작업 전반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상징물로 이번 전시의 다수 작품에서도 목격된다. 어떤 작품에서 알은 순수한 가능성을 대리하며 언제라도 드러날 수 있는 잠재력으로 가득 찬 듯 하다. 한편 다른 작품에서는 광원(光源)으로 가장하여 형태와 위치가 가로등을 연상시키기도, 혹은 공공 기념물로 격상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작품에는 세 개의 알이 캔버스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배치됨으로써 관람하는 이들로 하여금 작품에 선뜻 들어설 수 있는 초점 역할을 한다. 중앙에 위치한 알은 마치 기념물처럼 보이며 그 형태와 위치가 알을 둘러싼 프레임 장치를 통해 반복된다. 또한 작품 하단에 위치한 알은 연철(鍊鐵)로 추정되는 금속제의 잎사귀 무늬 장식에 둘러싸여 가로등 기둥 위에 부착된 것처럼 보인다. 작품의 푸른 색조는 광활한 수역을 나타내며 해안 도시의 경관임을 추정하게 하는 한편, 높이 치솟은 교량은 뉴욕, 홍콩, 상해와 같은 대도시의 수직성을 암시한다. 알은 피트먼이 상상하는 대안적 현재나 미래에서 재건된 도시에 여성성을 부여하는데, 이는 본질적으로 남성적이고, 시민 공간에 놓인 조각상이 대부분 남성 인물을 기리는 대도시에 대한 전통적 관념과 대비된다.
나아가 전시 작품 전반은 중층화된 시간의 순서와 서사를 보여준다. 피트먼은 특유의 화풍으로 단일 작품 안에 다양한 관점과 화면을 구성하는데, 이는 하나의 도시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상이하고도 중복되는 서사를 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로 인해 작품을 가득 채우는 구형 물체와 구멍, 두 눈은 캔버스 안에 펼쳐진 모든 것을 주시하는 것처럼 보인다. 《불투명한, 반투명한, 빛나는》은 기념비적인 6면화 <결정발광 Crystalloluminescence>(2021)를 포함한 피트먼의 엄격한 접근 방식이 돋보이는 일련의 신작들을 통해 전적으로 과거의 잔해에 얽혀 세워진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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