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리엘 벨트란(1985년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출생, 현재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거주 및 작업)은 예술 매체의 전통적 구분을 허무는 물감과 색상의 조각적 축적물을 창조한다. 회화와 조각의 개념을 시적으로 결합한 그의 작업은 “이미지가 되기를 거부”하고 대신 완전한 복합체로서 색을 구현한다고 작가는 설명한다. 벨트란은 라틴 아메리카 모더니즘 계보와 미국 전후 회화의 교차점 상에 자신의 작업을 위치시키며 이미지와 오브제, 표면과 실체, 평면과 구조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작품에서 그는 시지각적 효과를 탐구하면서도 물질성, 제작 과정 및 산업의 문제들을 동등하게 살피며 예술적 노동과 그것이 남긴 잔여물을 전면에 드러낸다.
벨트란의 작품 중 상당수는 제목에서 전문 약어로 표기되기도 하는 색상들의 특정 조합과 그 상호 작용을 다룬다. 작가에게 있어 완성된 작업은 일종의 “코드로 이루어진 패널”이며, 그것은 단일 이미지를 지시하기 보다 무수한 이미지의 가능성으로 가득한 독특한 시각 언어를 보여준다. 벨트란의 화면은 다층의 건조된 물감 축적물로 구성되고, 이로 하여금 작가는 움직이는 시각적 효과를 이끌어낸다. 그의 작업은 맞춤형 틀을 제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물감을 틀에 붓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것이 완전히 굳고 건조되면 이를 한 겹 더 쌓아 올린다. 때로는 작업실의 잔여 재료나 폐기물 등을 틀 안에 결합시켜 층위 구도에 “단절”을 도입하기도 한다. 수개월 혹은 수년 간의 반복 과정을 거쳐 물감층이 하나의 소용돌이와 색층 덩어리로 축적 및 응집되면, 작가는 틀을 제거한 후 주문 제작한 기계를 이용해 이를 가느다란 조각으로 잘라낸다. 그리고 위와 같이 잘린 얇은 조각들은 평면적인 구성으로 나무 패널 위에 배열 및 부착된다.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나 10대에 미국으로 이민한 작가는 베네수엘라의 여러 예술가들이 그의 작품 세계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밝혀왔다. 예컨대 벨트란은 선을 하나의 오브제로서 인식한 게고(Gego)와의 연결선상에서 가느다란 물감 조각의 물질성을 파악하는 한편, 시지각적으로 복잡하게 얽힌 구도는 헤수스 라파엘 소토(Jesus Rafael Soto), 카를로스 크루즈-디에즈(Carlos Cruz-Diez) 등 작가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박힌 베네수엘라 옵 아트, 키네틱 아트 예술가들과 그 역사를 가리키고 있다. 마이애미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아스포라 예술가로서 벨트란은 위와 같이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예술 역사와 전통의 교차점에 그의 작업을 위치시킨다. 작가는 잭 휘튼(Jack Whitten)의 재료적 실험과 린다 벵글리스(Lynda Benglis)의 붓기(pours) 기법,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의 유기적 격자와 잭슨 폴록(Jackson Pollock)의 화면에서 나타나는 플랫베드(flatbed) 개념, 그리고 색상의 표현적 가능성을 실험한 마크 로스코(Mark Rothko)를 비롯해 우연과 중력을 탐구한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등을 아우르는 다수의 미국 전후 예술가와도 중요한 연결점을 확인하고 있다.
벨트란은 색채의 광학적 효과를 탐구하면서도 색의 물질성과 그것이 노동 및 작업 과정과 연결되는 방식을 주의 깊게 살핀다. 작업 전반에 걸쳐 작가는 빛과 색이 물질과 형태에 부착되어 물리적, 촉각적 존재로서 지시되는 방식을 탐구해왔다. 그는 색이 빛에 의해 생성 및 인지되지만, 동시에 태양으로부터 발하고, 광물로부터 추출되며, 안료로써 제작되는 실체적 물질과도 연결되는 사실에 깊이 매료되었다. 벨트란의 예술적 실천은 팔레트 위에 층층이 겹쳐진 건조된 물감에 대한 관심에서 발전하기 시작했고, 예술 제작 과정에서의 잔여물과 색상이 남긴 흔적에 몰두한 그의 작업 역시 축적의 미학에 근간을 두고 있다. 화면에 물감을 겹겹이 쌓아가듯 작가는 작업을 통해 기억과 의미의 층 또한 축적한다.
예술적 노동 행위를 기록하고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한 벨트란의 작품은 물리적인 힘과 오랜 시간을 요하는 작업 과정을 여실히 드러낸다. 작가는 과거 건설, 제작, 설치 분야에서의 작업 경험이 그의 예술 실천과 물질성과의 관계에 지속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벨트란의 작업은 이러한 노동과 신체적 분투를 드러내며, 그것을 가시화함으로써 예술적 노동을 다른 형태의 노동과 구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첨언한다. “일반적인 노동은 표면 위에 드러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 만약 벽이 어떻게 칠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은 숙련된 노동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에 반해 예술적 노동은 보여지기 위한 것, 혹은 그 자체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벨트란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소재 뉴월드 예술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작가의 최근 개인전은 리만머핀 서울(2023), 뉴욕(2023), 팜 비치(2023)를 비롯하여 마이애미 센트럴 파인(2022, 2020)과 마이애미 아트 디자인 박물관 (2021) 등에서 개최되었다. 그의 작품은 다수의 그룹전에도 소개되었다. 주요 전시로는 마이애미 프로스트 미술관의 《Cut: Abstraction in the U.S. from the 1970s to the Present》(2019), 마이애미 현대미술관의 《GUCCIVUITTON》(2015), 북마이애미 현대미술관의 《T.A.Z.》(2015), 마이애미 페레즈 미술관의 《Global Positioning Systems: Urban Imaginaries》(2014),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소재 더 패브릭 워크샵 앤 뮤지엄의 《Liquid Matter》(2011) 등이 있다. 벨트란은 아티스트 컬렉티브이자 갤러리인 노구치 브레턴(구 GUCCIVUITTON)의 공동 창립자이자 디렉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작가의 작품은 유수의 공공 및 사립 기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기관으로는 마이애미 소재 데 라 크루즈 컬렉션, 마이애미 현대미술관, 페레즈 미술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