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머핀은 선구적 활동을 펼쳐온 작가 김윤신(1935년 원산 출생)과의 전속계약을 국제갤러리와 공동으로 체결했다. 김윤신의 작업은 오는 2월 열리는 프리즈 LA 리만머핀 부스에서 첫 선을 보인 뒤 3월 리만머핀 뉴욕 갤러리의 ‘인 포커스(In Focus)’ 전시에도 소개될 예정이다. 그의 작품은 작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에서 개최된 《김윤신: 더하고 나누며, 하나》 전에 뒤이어 올 3월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을 통해 서울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한국의 1세대 여성 조각가로 불리는 김윤신은 오늘날까지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서울을 오가며 활발한 예술적 실천을 펼치고 있다. 지난 60여 년간 그는 조각의 정통 문법을 구사하는 동시에 조각적 아이디어를 회화와 판화 등 평면 형식으로 확장하며 전방위적이고도 밀도 있는 작업을 선보였다. 리만머핀 프로그램에 속한 다수의 예술가들처럼 김윤신 또한 주위 환경에서 영감을 얻고 가공의 풍경을 작품에 구현했다. 작가 특유의 유기적 시각 언어는 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에 기반한 것이며, 1960년대 프랑스에 유학하고 1984년 아르헨티나 이주 후 멕시코와 브라질 등지에서도 활동했던 그의 노마드적 삶의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다. 자연 및 우주 만물의 질서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 원시, 영성, 전통 등의 주제에 천착한 작가의 철학과 조형 언어는 고도로 육체적인 노동을 거쳐 비로소 작품으로 시각화된다.
서울에 상설 전시 공간을 마련한 선구적인 해외 갤러리 중 하나인 리만머핀은 오랜 기간 한국과 긴밀한 유대 관계를 구축해 왔다. 리만머핀은 서도호, 이불, 성능경, 서세옥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한국 작가들과 협업을 지속해 왔고, 그 시작은 2000년도로 거슬러 올라가 이러한 관계가 초기 갤러리 DNA 형성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다양한 예술가들을 대표하고 이들의 작업을 새로운 지역에 소개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해온 리만머핀은 향후 김윤신의 국제적 행보를 뒷받침하는데도 주력할 예정이다. 또한 김윤신과의 협업은 세실리아 비쿠냐(Cecilia Vicuña), 쉬라제 후쉬아리(Shirazeh Houshiary), 하이디 부허(Heidi Bucher) 같은 다양한 여성 예술가의 목소리를 전하는 데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온 갤러리의 사명을 이어가는 것이기도 하다.
리만머핀 서울의 손엠마 수석 디렉터는 “60년대 후반과 70년대 대한민국 1세대 여성 조각가로서 활약한 김윤신의 초기 작업은 미래 세대의 여성 예술가들을 위한 길을 닦는데 긴요한 역할을 했고, 한국 미술의 다양화에 기여했다. 같은 시기의 한국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김윤신 또한 가부장제를 비롯한 당시 사회 관습에 도전했다. 강인한 자주정신과 인내를 토대로 보여준 작가의 다작 행보는 놀라울 따름이다. 그의 작업을 전 세계 새로운 관객과 공유할 기회를 갖고, 또 그러한 기념비적 순간에 국제갤러리와 협력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윤신은 “2023년은 나의 60여 년 예술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지난 40년간 아르헨티나에 머물며 작업한 것은 내 의지에 의한 결정이었고, 2022년 아흔을 눈 앞에 두고 한국을 방문한 것은 생애 마지막 고국 방문으로 계획된 것이었다. 2023년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개인전을 계기로 국제갤러리 이현숙 회장과 리만머핀의 라쉘 리만(Rachel Lehmann) 공동 창립자를 만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두 갤러리의 성원과 격려, 그리고 고국에 계신 분들의 따뜻한 환대에 깊이 감사드린다. 주어진 시간 동안 남은 힘을 다해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줄 수 있는 작품으로 보답하겠다”고 화답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현 북한 지역에 해당하는 강원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은 정치적 격변기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발한 한반도 분단 및 한국전쟁으로 작가는 가족과 서울로 남하했고, 그곳에서 예술가로서 길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1959년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1964년 프랑스 파리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 및 석판화를 전공하며 다양한 실험을 통해 고유한 조각적 감수성을 발전시킨다. 파리의 최신 예술사조를 경험한 후 1969년 귀국한 그는 국내 현대미술의 저변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상명대학교를 포함한 여러 대학에서 조각을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다른 여성 조각가들을 규합해 한국여류조각가회를 공동 발족한다. 또한 조각가로서 김윤신은 제1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비롯한 국내외 다양한 전시에서 활발히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1984년 남미의 광활한 자연 경관에 매료된 작가는 돌연 아르헨티나로의 이주를 감행한다. 작가는 그곳에 정착해 수십 년간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고, 200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김윤신미술관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김윤신미술관은 한국 교민이 아르헨티나에 건립한 최초이자 유일한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다.
김윤신의 작업은 고대의 구조적, 영적 요소를 내포하며 자연과 합일하기 위한 일련의 상호 작용을 통해 전개된다. 작가는 태고 혹은 기원의 세계를 표상하기 위해 내구성이 강한 견고한 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1970년대 초반의 조각 작업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두 목재 구조를 얽어 접합하는 전통 한옥의 결구(結構) 기법에 근간을 두고 있다. 한편 <기원쌓기 Stacking the Origins> 연작에서 김윤신은 이른바 토테미즘이라 불리는 원시 민간신앙에서 발견되는 자연물의 수직 쌓기 개념을 탐구한다. 전통 신앙과 유기적 순환에 대한 작가의 예술 철학은 1970년대 후반경부터 발전시킨 <합이합일 분이분일 Add Two Add One, Divide Two Divide One> 연작으로 포괄된다. 위 연작에서 김윤신은 수렴과 더하기를 의미하는 ‘합(合)’과 분열과 나누기를 뜻하는 ‘분(分)’의 개념으로 음양사상의 원리를 재해석하고, 이를 독자적 조형 언어로 표현해낸다. 완전한 하나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나무에 ‘더하고’ 목재의 겉껍질과 내부 공간을 ‘나누는’ 직관적이고도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거쳐 작가는 견고하고 거친 나무 덩어리를 부드럽고 유기적인 형태로 변환한다.
채도 높은 원색 화면과 기하학적으로 분할된 표면이 특징인 김윤신의 회화 역시 조각과 일관된 작가의 조형적 관심을 보여준다. 회화 역시 ‘합’과 ‘분’의 과정을 수반함으로써 완성된다. 작가는 나이프를 이용해 채색한 화면의 페인트를 긁어내는 방식을 취하는데, 큰 화면이 작은 화면으로 분할됨에 따라 기하학적 조형 인자와 조각적 공간이 형성된다. 김윤신은 아르헨티나에서 자생하는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돌과 나무, 그리고 남미의 토테미즘에서 나타난 화려한 무늬와 색조에 매료되었고, 동시에 그것에서 한국 전통 문양 및 오방색과의 뚜렷한 유사성을 목격했다. 위와 같은 발견은 후기 회화와 목재 조각 실험에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김윤신은 문화적, 영적 탐구를 통해 자연에 접근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몸소 체감한 시간들이 숙성된 결과 그는 자신이 선택한 제2의 고향 남미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주위 환경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이를 작업 안에 끌어올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