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밝은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안내자와 나는 숨겨진 그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길을 따라 걸으며 우리는 구태여 쉬지 않았고,
오를 뿐이었다. 그가 앞서고, 내가 뒤따르며, 마침내
둥글게 열린 틈을 통해 나타나는
하늘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고,
그곳에서 더 나아가자, 다시, 별들이 보였다.
—단테 알리기에리, 『신곡』 「지옥편」
리만머핀 서울은 작년 리만머핀 전속 작가로 합류한 태미 응우옌(Tammy Nguyen)의 첫 번째 갤러리 전시이자 한국 첫 개인전인 《필멸의 존재를 위한 희극: 지옥편 A Comedy for Mortals: Inferno》을 개최한다. 회화, 종이 작업, 아티스트 북 등 다양한 매체를 아우르는 작가의 신작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는 기독교 문학의 고전으로 여겨지는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의 『신곡 Divine Comedy』을 기반으로 한 작가의 전시 삼부작 중 첫 번째 순서다. 전시 시리즈는 2024년 리만머핀 런런던에서의 《필멸의 존재를 위한 희극: 연옥편》과 2025년 리만머핀 뉴욕에서의 《필멸의 존재를 위한 희극: 천국편》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작가는 또한 2023년 가을 미국 보스턴 현대미술관의 첫 미술관 개인전에서도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응우옌의 다학제적 예술 실천은 주로 내러티브적 접근 방식을 취하며 지정학, 생태학, 상대적으로 주목 받지 못한 역사들 간의 교차점을 탐구한다. 또한 작가는 독립 출판 플랫폼인 Passenger Pigeon Press를 설립하여 아티스트 북을 제작하는 등 다양한 매체를 가로지르며 실험적 접근을 이어 나간다. 그의 회화에 나타나는 우아한 형상과 조화로운 미학은 종종 그 서사가 지닌 맹렬함과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이는 보는 이들에게 보다 치밀한 독해를 유도한다. 이처럼 작가는 다양한 재료를 밀도 있게 쌓아 올린 레이어 속 복잡한 시각적 은유를 통해 평면의 시각적 차원을 혼동시킴으로써 형식과 내용 사이의 긴장을 탐구한다.
《필멸의 존재를 위한 희극: 지옥편》에서 응우옌은 언어 및 서사가 도덕적 척도의 모호함이나 윤리적 혼란을 야기하는 지점을 설계하는 방식에 대해 면밀히 살핀다. 그는 패러다임 전환으로 연결되는 잠재적 시작점으로서 이와 같은 사회문화적 회색 지대를 구상하고, 전환의 순간으로 인도할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전시 전반에서 작가는 수 세기를 사이에 두고 단절되다가 천상계 우주 가장 먼 곳에 도달하려는 광적 열기로 결속한 두 서사, 지옥의 아홉 개 고리를 통과하는 단테와 베르길리우스(Virgil)의 종교적 순례와 냉전 시대 정치의 쟁점인 우주 경쟁을 연결한다. 작가는 각 서사 내에 허구와 실존 인물을 교차시키며 상호 연결된 도상과 가려진 문구, 추상적 패턴과 구상적 형상으로 가득찬 곳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여정을 그린다. 《지옥편》에 대한 자신의 해석에 대해 작가는 “오르는 것이 있다면 내려가는 것이 있고, 내려가는 것이 있다면 또 오르는 것이 있다”고 언급한다. 오늘날 서구 세계관을 형성한 두 역사적 서사 간의 공간적·문학적 유사성을 그린 응우옌의 작품에서 우주로의 상승은 지옥으로의 하강과 동일한 것으로 묘사된다. 이와 같은 방향성의 전도는 식민주의, 종교, 폭력, 환경주의를 포함한 일련의 거시적 문제에 대한 작가의 질문을 확장한다.
『신곡』의 「지옥편」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지옥의 아홉 개 고리를 지나는 영적 여행에 (도덕적 계몽을 갈망하는) 단테를 인도하는 역할로 등장한다. 응우옌의 <Leading the Way>(2023)에서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베르길리우스의 형상은 선명한 나뭇잎 패턴에서 발현하는 듯 보이는데, 자세히 관찰하면 「지옥편」에 등장하는 인간의 머리와 전갈의 꼬리를 가진 뱀 모양 괴물이 복잡하게 엉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캔버스 표면에는 작고 빛나는 금속박이 미사일과 로켓 모양으로 압인되어 멀리서 바라보면 캔버스를 덮은 별이나 빗방울처럼 보인다. 좌측 하단 구도의 원 윤곽선은 조밀한 주변과 달리 성긴 내부가 특징적이다. 작가에 따르면 해당 원은 달을 표상하며, 마찬가지로 위치와 방향은 반전되었다. 베르길리우스가 지옥의 최하단을 향해 내려가면서 그는 마침내 천상계와 접촉한다. <My Guide and I>(2023)에서도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무성한 녹색 초목과 뱀의 무리를 등지고 나란히 등장한다. 이때 배경은 따뜻한 주홍빛과 분홍빛으로 발하는데, 이는 두 인물이 지옥을 통과하는 여정을 마치고 새로운 여명으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혹은 베르길리우스와 단테가 우주 탐사를 완수하고 태양의 열기와 빛을 향해 나아가는 것일 가능성도 있다.
응우옌은 로켓선의 단면도나 평면도로 보이는 다양한 우주선 이미지를 회화 전체에 분산 배치시킨다. <From Nation to Nation and Race to Race>(2023)에서 미국 성조기는 마치 감금된 듯 우주선의 그릴 안에 둘러싸인 동시에, 배치도 전체에 걸쳐지며 우주선을 집어삼키려고 위협한다. <This Place is Circular>(2023)에는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 대통령의 초상화가 로켓선 및 대통령 인장과 나란히 등장하고, 같은 층위에 있는 무성한 초목이 이들 이미지를 결합한다. 위와 같은 회화적 언어를 통해 작가는 윤리적 모호함에 대한 견해를 우주 경쟁 시기의 미국 지도부로 확장하고, 식민지 역사에 대한 광범위한 비평을 전달한다.
재료를 정제하는 응우옌의 작업 과정은 작가의 개념적 주안점으로 즉각 변환된다. 응우옌은 수채, 비닐 페인트, 스크린 인쇄, 스탬핑, 도금, 형압 등 다양한 재료 및 기술을 사용한 다층적 작업을 진행하고, 시각적 혼란을 발생시키기 위해 대상을 은폐하는 동시에 드러내기를 반복한다. 패널에 부착한 종이 위에서의 작업 방식은 재료와 형상의 조밀함 속에서도 작품에 뚜렷한 평면성과 선명성을 부여한다. 작가는 먼저 화면 전체를 옅은 농도의 물감으로 채색한 뒤 스크린 인쇄 공정을 통해 작품 속 대상들이 비닐 페인트의 여러 층위에서 다양한 패턴 및 모티프와 얽히도록 한다.
회화의 스크린 인쇄 공정에서 작가는 야광 잉크를 사용한다. 희미한 조명 속에 부분적으로 은폐된 『성조기 Stars and Stripes』 신문의 헤드라인은 「우주로 간 전우들 영웅으로 착륙하다 Space Comrades Land as Heros」, 「미국은 달에서도 러시아에 승리한다 US Will Beat Russia to the Moon」와 같은 장황함을 발산한다. 냉전 시기에 발행된 신문인 『성조기』는 당시 베트남에 주둔한 미군들이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정기 간행물이었고, 위 헤드라인은 해외 파병군에게 제공되는 고립된 특정 정보를 반영한다. 즉 포함된 기사 문구는 동남아시아와 디아스포라에 대한 작가의 지속적 관심을 통합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베트남계 미국인인 응우옌은 베트남의 열대 기후를 기독교적 관념으로서의 지옥과 행성체로서 태양의 열기와 비교하며 해당 지역 내 냉전과 우주 경쟁 관련 정보의 확산 양상을 분석한다.
응우옌은 그의 회화적 실천을 아티스트 북을 구성하는 작업과의 관계 속에 서 생각한다. 아티스트 북의 편이한 크기와 상호작용의 가능성, 문학적 함 축성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언어가 지니는 물질성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입 하도록 유발한다. 작가는 《필멸의 존재를 위한 희극: 지옥편》을 위해 총 아 홉 권의 아티스트 북을 제작하였는데, 그중 다섯 권은 리만머핀에서, 네 권 은 소전서림(4월 8일–5월 6일)에서 소개될 예정이다. 각 권은 여러 겹으로 펼쳐지며 궁극적으로 우주선 형태를 연출한다. 아티스트 북에서 응우옌은 「지옥편」의 원문을 직접 인용한 뒤 스탠자(stanza)의 특정 구절을 삭제하 거나 변경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을 추가한다. 위 과정을 통 해 완성된 아티스트 북은 작품 전체를 순환시키며 작가의 서사적·개념적 맥락을 그 뿌리, 즉 한 세계를 건설하고 해체하는 언어의 힘과 그 유연성에 대한 탐구로 복귀시킨다.
Media Inqui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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