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머핀은 갤러리의 서울 스페이스와 송원아트센터 두 전시 공간에서 9월 26일부터 11월 9일까지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 라이자 루(Liza Lou)의 첫 번째 서울 개인전 《강과 뗏목 The River and the Raft》을 개최한다. 30년 이상 구슬(glass beads)을 주재료로 다루면서 작가는 자신이 선택한 재료의 범위를 넓히며 구슬 자체의 물질적인 잠재력뿐 아니라 개념적 대상으로 이를 탐구해왔다. 두 전시공간에 걸친 본 전시에서 루는 재료의 본성인 형태적 비이항성(非二項性)과 예술 행위의 본질에 대한 탐구 면에서 회화와 조각, 두 장르 모두로 분류될 수 있는 연작을 완성함으로써 자신의 작업이 도달한 새로운 단계의 정점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의 오프닝 리셉션은 9월 26일 5시에 리만머핀 서울(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3길 74-18)과 송원아트센터(서울시 종로구 윤보선길 75)에서 열릴 예정이다.
불교 경전에서 ‘뗏목’에 관한 우화는 자신이 건너야 하는 강 앞에 선 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다. 배 한 척도, 건널 수 있는 다리도 찾지 못한 남자는 뗏목을 만든다.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알맞은 모양을 잡고 밧줄로 나뭇가지들을 하나로 묶은 그는 자신이 안전하게 강을 건널 수 있을 때까지 거듭해서 모형을 시험해본다. 맞은 편 강둑에 다다르자, 남자는 안전하게 그 여정을 성공할 수 있게 한 도구였던 자신의 창작물로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당황하게 된다. 여기서 질문이 뒤따른다. 그는 그를 번거롭게 하고 전진을 느리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뗏목을 계속 가지고 가야 할까? 즉, 이 이야기는 우리가 추구했던 일을 위해 들였던 공과 시간의 가치를 놓는 일에 관한 교훈이다. 그 상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는 홀가분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수십 년간, 루는 구슬로 하는 작업에 내재된 도전에 맞서면서 순수예술의 재료로는 비전통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구슬의 한계를 하나의 형태가 가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탐구로 변화시켰다. 작가 커리어의 분수령이 된 작업이자 휘트니미술관에 소장된 <Kitchen>(1991-1996)은 부엌 전체를 구슬로 덮어씌운 작품으로 장장 5년에 걸쳐 작가가 혼자서 완성한 것이다. 루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동부의 콰줄루나탈(KwaZulu-Natal)에 위치한 스튜디오에서 2005년부터 줄루족 장인들과의 협업을 시작했다. 루의 작업은 과정, 노동, 아름다움 그리고 자신의 예술적 여정에 다른 사람들을 초대함으로써 생겨나는 우연의 결과물을 우선시하는 다소 엄격한 실천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대부분의 작가 조수들이 ‘드러나지 않게’ 작가를 돕는 것과는 달리, 루의 조력자들은 그들의 손에서 나온 기름이 묻어 구슬이 물들거나, 조금씩 차이가 나는 직조 방식을 통해 말 그대로 자신들의 ‘자국’을 작품에 남긴다. 이런 팀과 일하면서 완성한 기념비적인 작품 <The Waves>(2016)는 마치 하얀 천처럼 보이는 구슬로 만들어진 1,000개의 시트로 구성된 것으로, 제작과정과 이를 만든 이들로부터 분리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을 필두로 작가는 미니멀리즘적 접근법의 잠재력을 수년간 연구하고, 궁극적으로 가장 기본적인 시각 요소 (색, 빛, 선, 부피, 질감)로 복귀해 구슬을 물감처럼 다시 주조하고, 섞어서 캔버스에 결합시켰다.
최근 들어 루는 자신의 작업 과정과 매체를 가능한 한계의 끝까지 밀어붙인다. <The Waves>를 완성하면서 본 전시에서 소개될 신작을 위한 추진력을 얻은 작가는 밀도 높고 다층적인 배열로 구슬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겹쳐 놓고 깨트리고 꿰매는 등 특유의 비정통적인 작품 제작 방식을 지속한다. 루의 실재적이고 주형적이며, 평면적인 동시에 3차원적인 공간에 관한 실험은 <Miserere mei, Deus>(2019)같은 작품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Psalm 51>(2019)에서 구슬은 섬세한 레이스 모양의 패턴으로 활용되는데 각각의 천에는 문을 연상시키는 구멍이 남겨져 있고, 그 사이로 형형색색의 유화가 노출된다. 다른 작업들, 가령 <Comfort Animal>(2019)에서는 자유롭게 걸려있는 듯하면서 덮개처럼 겹쳐진 천이 군데군데 찢어져 있고, 그 아래로 흡사 멍든 모양으로 보이는 물감이 발라져 있다. 물감의 얼룩과 부스러기를 재창조해 드러냄으로써 작가는 구슬로 엮은 직물을 해체하고 이를 새로운 영역으로 옮긴다. 이런 추상적인 접근은 두꺼운 임파스토(impasto, 물감을 두껍게 칠해 질감을 강조) 기법의 유화가 특징인 신작 시리즈 전반에서 두드러진다. <Sunday Morning>(2019)은 안료와 섞지 않은 날 것의 색채를 색조 변화도에 따라 그룹화해서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를 통해 유화에 조각적인 성질을 부여하고, 그려졌다기보다는 주조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는 구슬을 직조해 완성된 각각의 표면을 만들기위해 들어간 노동과 기민함을 연상시킨다. 이외의 다른 작업들에서 작가는 거의 띠처럼 보이도록 구슬을 엮은 실에서 드러나는 보다 미묘한 색조를 표현한다. 벽 위에 펼쳐 엮어진 이런 작품들은 다른 작품들이 품고 있는 강렬한 에너지 사이에서 편안하고 고요하게, 갓 세탁한 빨래가 줄에 널려있는 것처럼 미적으로 충만한 느낌을 준다.
각각의 작품에서 관객들은 루의 전작 시리즈가 보여줬던 요소들에 대한 힌트를 살필 수 있다. 그것은 이전에 이룬 각 측면의 절정이자, 작업에 있어 작가가 이 해방된 장소로 가기위해 필요한 뗏목인 셈이다.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재료를 관찰하고 관심을 기울인 결과로 얻은 능숙함으로 루는 예술적 실행의 궁극적 원칙 중 하나를 드러내왔다. 바로 자유는 오히려 한계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나의 재료에 집중하기로 선택함으로써 작가는 회화와 조각이라는 예술 매체의 위계적 본성이 설정하는 범위를 재조정해 전통적인 것으로 분류되지 않는 재료를 두 장르의 스펙트럼을 가로질러 각각의 끝까지 밀어붙인다. 라이자 루가 “미니멀리즘의 진수”라고 묘사하는 것처럼, 이는 미니멀리스트 팔레트의 형태와 개념적 기능에 관한 섬세한 연구이지만, 특히 제작자를 지워버리는 등의 미니멀리즘적 도그마와 함께 강기슭에 남겨져 있다.
한편, 오는 11월 22일 뉴욕 휘트니미술관은 루의 기념비적 설치작품 <Kitchen>을 2021년까지 열리는 장기 소장품전인 《Making Knowing: Craft in Art, 1950-2019》에서 소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