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머핀 서울은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맨디 엘-사예(Mandy El-Sayegh)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근민의 이인전 《Recombinant》를 개최한다. 전시의 제목은 ‘재조합 DNA(recombinant DNA)’라는 유전학 분야의 용어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서 재조합이란 분리된 DNA 절편을 유전자상에 다시 결합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물질이 발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 세포, 더 나아가 유기체의 유전 정보는 상호 교환된다. 두 작가의 신작으로 구성된 본 전시는 둘의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엘-사예는 검색 엔진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이근민의 작품을 발견했다. 자신의 작업과 유사한 이미지로 그의 작품이 검색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두 작가는 여러 해 동안 원격으로 교류하며 전시를 발전시켰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엘-사예와 이근민은 주로 이미지를 공통언어 삼아 소통했고, 그 과정에서 미적 취향과 각자의 작업 방식을 특징짓는 예술적 충동 등에서 접점을 찾는다. 《Recombinant》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추상화된 신체를 그리는 두 작가의 작업을 한데 전시하며, 개별 주체들이 사회의 구조적 틀 안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자신을 대변할 길을 모색하는지 등 더욱 광범위한 주제로 나아가고자 한다.
이근민의 작업은 유기체적 형태를 대형 화폭에 그려내는 것이 특징적이다. 작가는 살, 팔다리, 장기, 순환계를 암시하는 듯한 형상을 특유의 추상적 화법으로 담아낸다. 그의 거대한 회화 작업을 근거리에서 마주할 때 작품은 압도적이고 불가해한 이미지가 된다. 이근민의 작품에는 종종 인체의 일부가 파편적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작가 자신이 병원에 입원하게 된 시기에 경험한 환각에서 기인한다. 이근민의 회화는 당시의 기억에 형태를 부여하고자 하는 시도로 볼 수 있으며, 그 기억이란 지금껏 타인에게 전달 가능한 언어나 수단이 부재한 대상이었을 것이다. 작가가 그리는 신체는 사회적 맥락이 사라진 상태로, 이 안에서 개인은 살, 근육, 혈관 등의 단위로 존재한다. 작업 전반에 사용되는 붉은 색조 또한 작업의 추상적 특징을 강화한다. 이처럼 작가는 날카롭고 노골적인 방식의 분출보다는 환각을 ‘정제’하기를 의도적으로 선택한다.
전시 공간의 1층 벽면에는 이근민의 거대한 삼면화 작업과 함께 엘-사예의 신작과 현재 작가가 주요하게 탐구하고 있는 회화 연작의 작품들이 병치되어 있다. 혈흔이나 피부를 연상시키는 색조와 푸른 파스텔 색조를 사용한 엘-사예의 작품은 일몰 혹은 멍이 든 피부를 연상시킨다. 그의 회화에 스크린 인쇄된 텍스트는 군사작전의 암호명이나 광고 및 신문 조각에서 모은 것으로 이러한 요소들이 모여 일종의 ‘구체시(concrete poems)’를 이룬다. 엘-사예는 오랜 기간에 걸쳐 여러 단어와 문구를 수집하면서 그것들의 모음이 촉발하는 모호한 독해 방식과 그것들이 더욱 넓은 사회정치적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두고 있다.
갤러리의 2층 전시 공간 역시 엘-사예와 이근민의 대형 회화가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1층에 전시된 작품에 비해 채도가 낮으며 부드러운 파스텔 톤의 색상을 띤다. 그러나 동시에 전시의 모든 작품에는 신체와 관련된 요소들이 등장하며, 엘-사예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들 작품은 “촉각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신체에 달려있다.” 신체 및 제도적 맥락과의 연계성은 두 작가 모두의 예술적 실천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엘-사예는 병원과 교도소와 같은 제도적 조건을 탐구하는 설치 및 평면 작업을 만들고, 이근민은 병증을 진단받은 후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던 자신의 경험을 고찰하는 회화 작업을 한다. 특히 이근민은 ‘다름’을 병리화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사회 규범과 시스템을 비판한다:
“정신 건강과의 상호작용은 예술에서 중요하며, 이는 대부분의 창작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나는 한국에서 이러한 주제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 밝힐 어떠한 의무도 갖고 있지 않지만, 만약 내가 작품을 통해 소외되거나 조야한 것, 아프고 추한 것에 집중한다면 아웃사이더 예술 유형에 대한 관심은 증가할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예술가들이 각자의 병리적 개인사를 뛰어넘어 가치를 인정받을 때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근민, 「그리고 그 누구도 아프지 않았다 - 스페이스K에서 진행 중인 이근민 개인전에 대한 작가의 인터뷰」에서 인용, platform-magazine.com, 2022년 5월 12일.)
전시 공간에는 엘-사예의 사운드 작업 <En masse (collective body)>(2022)가 두 개 층 모두에서 들리도록 연속 재생된다. 작곡가인 릴리 오크스(Lily Oakes)와 공동 작업한 이 작업은 전기 조명의 마찰음처럼 병원 및 기타 기관에서 추출한 사운드 샘플과 작가 본인이 경험했던 이명 증상에 대해 숨죽여 읊조리는 소리를 담고 있으며, 이는 엘-사예와 이근민의 작업에 나타나는 주제들과 연결된다. 엘-사예는 전시를 준비하던 기간 중 해당 작업에 한가지 새로운 요소를 추가하게 되는데, 이는 같은 기간 이태원에서 일어났던 안타까운 사고에 대한 것이다. 많은 희생자와 부상자를 남긴 이 사고 이후, 인터넷에는 질식사를 피하기 위한 지시사항 등이 확산되었다. 엘-사예는 이처럼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일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 그 지시사항을 읽는다. 이는 (이근민의 경우 개별화 할 수 없는 생물학적 물체로 표현되는) 개인의 신체라는 단위를 통해 다수의 사람들과 개인의 관계, 또는 사회 속 존재되기의 과정에 있는 개인을 가늠해보고자 하는 두 작가의 작업과 관계되어 있다.
또한 전시에는 엘-사예가 탐구 중인 기존 연작의 신작들과 새로운 연작 <Editorial Alias>의 작품들이 포함되었다. 그중 <Editorial Alias> 연작에 해당하는 몇몇 회화 작업에는 스크린 인쇄된 “GØUCC”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이 단어는 엘-사예의 아버지가 취미로 아마추어 라디오 활동을 하며 사용했던 콜사인(call-sign), 즉 개인 식별명이었다는 점에서 시적 중의성을 띠며, 동시에 구찌(GUCCI)의 로고에 사용되는 것과 유사한 서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출신 서예가인 작가의 부친은 체계에 의해 지워진 역사에 예속된 인물로 볼 수 있다. 그가 작업한 서예는 문화적 가치를 띠며 상품화된다. 영국으로 이주한 후 엘-사예의 부친은 자신의 출신을 유추할 수 있는 성(姓)을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느껴 자주 다양한 가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번 연작에서 엘-사예는 문화사와 개인의 정체성, 상품 언어와 같은 개념을 작품에 활용한다. 예컨대 럭셔리 브랜드의 기표를 차용하는 ‘부틀레깅(bootlegging)’은 일종의 권력을 훔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엘-사예의 회화에 나타나는 라디오 콜사인의 이미지는 정체성을 숨기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을 알리기 위해 내보내는 신호라는 점에서 이근민의 작업과도 연결점이 있다. 공통적으로 두 작가는 개인의 고유성을 지우고자 하는 제도적 구조와 이를 마주한 소외된 개개인들이 스스로를 대변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Media Inquires
Sarah Levine, Global Director of Marketing & Communic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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