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공간(Light and Space)의 작가 헬렌 파시지안(Helen Pashgian)의 주요 개인전이 리만머핀 홍콩과 서울 갤러리 두 공간에서 펼쳐진다. 이번 전시는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작가 파시지안이 아시아에서 처음 여는 개인전으로, 작가의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인 렌즈, 구 그리고 벽에 거는 조각 신작을 소개한다. 1960년대에 제임스 터렐, 로버트 어윈, 래리 벨, 메리 코스, 드웨인 밸런타인, 피터 알렉산더 같은 작가들과 어울려 활동한 파시지안은 플라스틱 에폭시와 레진 등의 산업 재료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예술작품으로 만들어내는 데 필요한 테크닉을 발전시킨 핵심 인물로 여겨진다. 그녀는 이런 날것의 재료들을 변형하여 빛을 품고 발산하는 영묘한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오프닝 리셉션은 11월 14일 오후 5시부터 7시까지, 율곡로 3길 74-18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린다.
파시지안의 1차적 목적은 조각의 매체이자 주제 양쪽 측면에서 빛을 탐구하는 것이다. 애초에 미술사를 전공하여 학자의 길을 가고자 했던 파시지안은 빛을 그리는 혁신적 능력으로 잘 알려진 17세기 네덜란드 거장들을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려고 계획했었다. 그러다 1960년대 초에 예술 창작으로 관심을 돌려 산업 재료를 이용해 작품을 만들며 주조 기술을 실험했으며, 이를 통하여 레진을 이용해 단단한 형태 속에 빛을 가둘 수 있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선구적인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1970-71년부터 파시지안은 캘리포니아의 항공우주 산업에서 개발된 수많은 재료들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허가받은 최초의 예술가∙과학자 집단에 속하게 되었는데, 이 재료들은 최근에 들어서야 기밀 해제되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 기간동안 파시지안은 그 실험 범위를 확장하여 고도로 휘발성이 강한 고분자 합성물을 이용해 작품의 규모를 극적으로 확대할 수 있게 되었다. 수 십 년 동안 재료를 다루는 기술을 완벽하게 연마함으로써 작가는 꾸준히 혁신을 이루어 낼 수 있었고, 2006년에는 전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2.5미터짜리 기둥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는 2014년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서 열린 《헬렌 파시지안; 보이지 않는 빛 Helen Pashgian; Light Invisible》전에서 집중 조명된 작업이었다.
저명한 미술비평가이자 뉴욕 현대미술관의 회화∙조각 부문 치프 큐레이터였던 커크 바네도는 빛과 공간 운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빛과 공간 운동은 소멸과 초연을 향해 밀고 나간다. … 이는 광학적 양식이 아니라, 실제적인 광학적 경험이다. … 미 서부 해안 지역 미니멀리즘의 요체는 모호함에 있다.” 모호함이라는 개념, 즉 덧없이 사라져버리는 작품을 바라보는 일시적이고도 개인적인 경험이야말로 파시지안 작업의 범주를 정의하는 것일 수 있다. 동료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파시지안 역시 빛, 색채, 대기를 다루는 데 개입하지만, 그녀의 작업을 경험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관람자의 움직임에 있다. 파시지안은 각각의 조각 내부에 독특한 형태의 프리즘을 삽입하는데, 이는 단순히 광선을 전송하는 도구에 멈추지 않고 관람자의 움직임에 의해 구동되어 관람자가 작품과 맺는 물리적 관계에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그 결과 그녀의 작품은 본질적으로 관계적인 것이 된다. 관람자의 시각적 인지가 파시지안의 조각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이 효과는 파시지안의 벽에 거는 조각작품에서 뚜렷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마치 벽 앞에서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자리를 타원형으로 구부림으로써 얻은 이 효과는 단독으로 서 있는 기둥 조각작품의 추동력이자 근간이기도 했다. 두 연작 모두 특정 위치에서만 볼 수 있는 요소들을 품고 있는데, 관람자들은 움직여야만 이런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호기심 강한 관람자들에게만 보상이 주어지는 셈이다. 그녀의 구형 작품에서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는데, 파시지안은 빛의 반사하고 굴절하는 특성을 면밀히 연구하여 선택한 색조들로 고도로 농축된 색채를 개발하여 이를 작품에 활용했다. 유리처럼 반사하는 표면을 만들어내기 위해 꼼꼼하게 사포질을 하고 광을 낸 이 구체들은 파시지안이 삽입한 내부의 형체를 통해 주변 환경의 이미지와 빛을 흡수하고, 또 왜곡하기도 한다. 최근에 파시지안은 렌즈 작품을 다시 제작하기 시작했는데, 좌대 위에 놓인 이 볼록한 원반의 중심부는 색채를 발산하고 표면 가장자리는 주변 환경으로 녹아들어가는 듯 보인다. 이 작업은 형식적 완성도와 바라봄의 메커니즘을 융합하는 작가의 능력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라 할 수 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빛과 색채를 바라보는 데서 기쁨과 경이를 느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작가의 가장 내밀한 작업이라 할, 벽에 거는 30센티미터짜리 정사각형 연작에서 각각의 작품은 수면을 통과한 빛을 실제로 포착해낸 듯한 순간을 보여준다. 마치 물 밑에서 관찰할 수 있을 법한 효과다. 이런 상호작용에 평생 동안 매혹되어 있던 파시지안이기에, 작가의 입장에서는 가장 직접적인 사실주의의 성취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작품들은 대단한 깊이와 뉘앙스를 지닌 찰나의 순간을 응시할 가능성, 혹은 작가가 말한 대로 “눈이 닿지 못할 장소, 불가사의한 곳에의 접촉” 가능성에 문을 열어준다. 이것이 아마도 파시지안의 전체 작품을 가장 잘 설명해내는 말일 듯하다. 관람자들이 사전에 결론을 내리는 위험을 피하게 하기 위해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 파시지안은 빛처럼 보편적이고, 감정에 호소하고, 또 찰나적인 주제를 선택한다. 세상을 지각과 환영, 즉 알려지지 않았으나 발견 가능한 것에 근거를 두고 바라보게 하기 위해서다. 궁극적으로, 그녀의 작업은 우리에게 면밀히 바라보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성향을 따르라고 요청하며, 혹시나 놓친 것은 없는지 계속 살펴보라고 강력하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