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만머핀 서울은 미국의 현대미술가 데이비드 살레(David Salle, b.1952)의 개인전 《현실의 연금술 Alchemy in Real Life》를 개최한다. 리만머핀과의 네 번째 전시이자 서울 갤러리에서 처음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팬데믹 기간 동안 새롭게 선보인 <Tree of Life> 시리즈의 신작 7점을 소개한다. 미국 캔자스주 위치타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살레는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칼아츠)에서 수학, 1973년 학사학위와 1975년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영향력 있는 시각 예술가 집단 ‘픽처스 제너레이션(Pictures Generation)’의 일원이기도 한 그는 대중문화나 상업 광고에서 차용한 각기 다른 이미지들을 직접 관찰해 만든 이미지나 다양한 예술사적 참조와 결합하여 자신만의 회화 언어를 구축해왔다. 작품은 정교하고도 매우 직관적인 접근 방식으로 구성되어 친숙하거나 낯선 주제 간의 새로운 연관성 및 관계를 제시한다. 그의 다층적 회화 작업은 주제 자체를 전면에 드러내는 대신 즉각적인 형식적울림을 전하고, 감상하는 이들의 열린 해석과 다양한 접근 방식을 수용한다. 또한 화면 전체에 시선이 고르게 닿을 수 있도록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오랜 시간 관조해야 마땅하다.
살레의 <Tree of Life> 연작은 다양한 상호 관계에 놓인 남녀가 등장하는 삽화 형식을 취한다. 작품 속 인물들은 대공황 시기에 명성을 얻고 잡지 뉴요커(The New Yorker)에서 한 컷 만화를 부흥시킨 피터 아르노(Peter Arno)의 만화를 연상케 한다. 당시 아르노 만화의 독특한 스타일과 한 줄 지문은 사회적 풍자로 가득했고 종종 미국 상류층을 겨냥한 것이었다. <Tree of Life> 연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화 중인 것처럼 보이는데, 이로 인해 관람자는 마치 아르노 만화에서처럼 작품을 설명하는 대화의 다음 대사를 유추해볼 수 있다. 전시작 <Tree of Life #26>는 오버코트에 구겨진 모자를 걸친 침울한 표정의 남성이 끈이 없는 드레스와 보석으로 장식된 목걸이, 큰 모피 코트로 근사하게 차려 입은 여성을 막아선 듯한 장면을 연출한다. 회색조의 인물들은 밝은 파란색 배경과 중앙의 붉고 잎 없이 앙상한 나무와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전체적으로 추운 겨울밤의 심상을 자아내는 작품의 왼쪽 하단 모서리에는 손으로 그려넣은 꽃들이 마치 여름날의 환영처럼 표현되어 있다. 관람자는 어떤 중요한 시점에 놓인 두 인물을 우연히 본 것 같은 인상을 받는데 어쩌면 작품 속 여성은 자신 뒤에 있는 남성을 방금 알아차렸거나, 혹은 이 남성이 어둠 속에서 걸어나와 그녀를 막 부른 참일지도 모른다. 해당 연작의 모든 작품에서 발견되는 대상과이들이 처한, 간혹 맥락 없는 상황 간의 모호한 관계성은 전체 스토리를 쉽게 파악할 수 없게 한다. 살레의 전체 작업이 그렇듯 관람자는 각 작품에 묘사된 장면의 직전이나 직후의 상황을 가늠할 수는 있지만 완전히는 아닌, 따라서 작품이 담고 있는 서사를 전적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이번 《현실의 연금술》전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나무는 캔버스를 수직으로 이등분하고 피사체와 배경의 구분을 불분명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한 그루의 나무는 두 성별, 즉 여성과 남성 사이를 시각적으로 분리하는 장벽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는 에덴 동산의 역사적 묘사 방식이나 타로 카드에 등장하는 이미지를 참조하는 형식적 장치이다. 생명의 나무는 다수의 종교적, 철학적, 신화적 전통에서 모든 피조물을 지탱하는 역할로 그려지며, 살레의 동명 연작에 등장하는 생명의 나무는 각 작품 속 장면에 포개어져 시리즈 전체에 어떤 흐름을 제시하는 동시에 등장 인물의 시대를 특정 짓는 의복이나 회화적 양식에 일종의 영원성을 부여한다. 해당 연작에서 눈여겨 볼 만한 혁신적 요소는 지표면 위에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나무의 윗 부분 뿐만 아니라 땅 속 뿌리까지 함께 화폭에 담긴 점이다. 각 작품에서 나무의 뿌리는 전체 구성의 하단부 1/3을 차지하는데, 상단의 커다란 캔버스 바로 아래 개별 패널로 구획되어 배치되기도 한다.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는 하단부 패널은 폭넓은 의미로 작품의 ‘무의식’이나 집단적 역사의 재현이기도, 혹은 단순히 과거나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를 나타내기도 한다. 이러한 패널들은 살레의 관계적 구성에 대한 성향과 기술은 물론 형태적 표현의 풍부함이 새로운 정점에 달했음을 반증한다. 나아가 각양각색의 나무 뿌리가 사다리나 벌레, 인간의 두상, 몸통, 손, 그리고 ‘순수한' 관념의 구절들과 뒤섞인 구성은 강렬하고 생동감 넘치는 색의 사용과 힘찬 선의 표현이 돋보이는 살레 특유의 화법을 전유한다. 살레는 다수의 에세이에서 그림의 의미를 푸는 열쇠는 무엇을, 어떻게 그리는 지에 관한 것이라 서술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이를 분명하고도 명확히 드러내며, 이것이야말로 ‘현실의 연금술(Alchemy in Real Lif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