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신(1935년 원산 출생, 현재 한국과 아르헨티나에서 작업)은 오랜 기간 자연을 소재이자 주제로 삼아 작업을 지속한 한국의 1세대 여성 조각가이다. 그는 지난 60여 년간 조각의 정통 문법을 구사하는 동시에 조각적 아이디어를 회화와 판화 등 평면 형식으로 확장하며 전방위적이고도 밀도 있는 작업을 선보였다. 작가 특유의 유기적 시각 언어는 자연에 대한 깊은 존경에 기반한 것이며, 1960년대 프랑스에 유학하고 1984년 아르헨티나 이주 후 멕시코와 브라질 등지에서도 활동했던 그의 노마드적 삶의 방식과도 연결되어 있다. 자연 및 우주 만물의 질서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바탕으로 오랜 기간 원시, 영성, 전통 등의 주제에 천착한 작가의 철학과 조형 언어는 고도로 육체적인 노동을 거쳐 비로소 작품으로 시각화된다.
김윤신의 작업은 고대의 구조적, 영적 요소를 내포하며 자연과 합일하기 위한 일련의 상호 작용을 통해 전개된다. 작가는 태고 혹은 기원의 세계를 표상하기 위해 내구성이 강한 견고한 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한다. 1970년대 초반의 조각 작업은 못을 사용하지 않고 두 목재 구조를 얽어 접합하는 전통 한옥의 결구(結構) 기법에 근간을 두고 있다. 한편 <기원쌓기 Stacking Wishes> 연작에서 김윤신은 이른바 토테미즘이라 불리는 원시 민간신앙에서 발견되는 자연물의 수직 쌓기 개념을 탐구한다. 전통 신앙과 유기적 순환에 대한 작가의 예술 철학은 1970년대 후반경부터 발전시킨 <합이합일 분이분일 Add Two Add One, Divide Two Divide One> 연작으로 포괄된다. 위 연작에서 김윤신은 수렴과 더하기를 의미하는 ‘합(合)’과 분열과 나누기를 뜻하는 ‘분(分)’의 개념으로 음양사상의 원리를 재해석하고, 이를 독자적 조형 언어로 표현해낸다. 완전한 하나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영혼을 나무에 ‘더하고’ 목재의 겉껍질과 내부 공간을 ‘나누는’ 직관적이고도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거쳐 작가는 견고하고 거친 나무 덩어리를 부드럽고 유기적인 형태로 변환한다.
채도 높은 원색 화면과 기하학적으로 분할된 표면이 특징인 김윤신의 회화 역시 조각과 일관된 작가의 조형적 관심을 보여준다. 회화 역시 ‘합’과 ‘분’의 과정을 수반함으로써 완성된다. 작가는 나이프를 이용해 채색한 화면의 페인트를 긁어내는 방식을 취하는데, 큰 화면이 작은 화면으로 분할됨에 따라 기하학적 조형 인자와 조각적 공간이 형성된다. 김윤신은 아르헨티나에서 자생하는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돌과 나무, 그리고 남미의 토테미즘에서 나타난 화려한 무늬와 색조에 매료되었고, 동시에 그것에서 한국 전통 문양 및 오방색과의 뚜렷한 유사성을 목격했다. 위와 같은 발견은 후기 회화와 목재 조각 실험에 영향을 미쳤다. 이처럼 김윤신은 문화적, 영적 탐구를 통해 자연에 접근했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몸소 체감한 시간들이 숙성된 결과 그는 자신이 선택한 제2의 고향 남미에서 새로운 관점으로 주위 환경과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이를 작업 안에 끌어올 수 있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현 북한 지역에 해당하는 강원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은 정치적 격변기에 유년 시절을 보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발한 한반도 분단 및 한국전쟁으로 작가는 가족과 서울로 남하했고, 그곳에서 예술가로서 길을 개척하기 시작한다. 1959년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1964년 프랑스 파리 국립고등미술학교에서 조각 및 석판화를 전공하며 다양한 실험을 통해 고유한 조각적 감수성을 발전시킨다. 파리의 최신 예술사조를 경험한 후 1969년 귀국한 그는 국내 현대미술의 저변 확대를 위해 적극적인 활동을 펼쳤다. 상명대학교를 포함한 여러 대학에서 조각을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다른 여성 조각가들을 규합해 한국여류조각가회를 공동 발족한다. 또한 조각가로서 김윤신은 제12회 상파울루 비엔날레를 비롯한 국내외 다양한 전시에서 활발히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1984년 남미의 광활한 자연 경관에 매료된 작가는 돌연 아르헨티나로의 이주를 감행한다. 작가는 그곳에 정착해 수십 년간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고, 2008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김윤신미술관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김윤신미술관은 한국 교민이 아르헨티나에 건립한 최초이자 유일한 미술관으로 알려져 있다.
작가의 최근 개인전은 대전 이응노미술관(2024), 뉴욕 리만머핀(2024), 양구 박수근미술관(2024), 서울 국제갤러리(2024),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2023), 서울 흰물결갤러리(2022, 2015), 서울 갤러리 반디트라소(2022),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E2ART 갤러리(2022), 부에노스아이레스 소재 주아르헨티나한국문화원(2022, 2021, 2018), 바르샤바 소재 주폴란드한국문화원(2019), 마드리드 소재 주스페인한국문화원(2019), 부에노스아이레스 필라르 문화 센터(2017), 아르헨티나 코르도바 카빌도(2016), 아르헨티나 멘도사 시립 현대미술관(2015), 서울 한원미술관(2015), 코르도바 마리아 엘레나 크라베츠 갤러리(2010), 아르헨티나 아줄 로페즈 클라로 미술관(2009) 등에서 개최되었다.
그의 작품은 다수의 그룹전에도 소개되었다. 대표 전시로는 2024 조각도시서울의 《경계없이 낯설게》(2024, 예정 전시), 뉴욕 Art at Americas Society(2024, 예정 전시), 서울 아르코미술관의 2024 아르코미술관 창작산실 협력전시 《집(ZIP) 》(2024), 경기도 양주 안상철 미술관의 《한국 추상화가 15인의 어제와 오늘》(2015), 미국 워싱턴 D.C. 소재 주워싱턴한국문화원의 《Green Life》(2012), 익산 국제돌문화프로젝트의 《스톤랜드》(2012), 부에노스아이레스 주아르헨티나한국문화원의 《Encuentro》(2011),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국제조각 심포지엄(2007), 브라질 상파울루 올리도 갤러리의《남미 한민족 작가 문화예술 교류전》(2006), 이천 한국-스페인 국제조각심포지엄(2003), 중국 베이징 국제조각 심포지엄(2002), 제7회 로사리오 국제조각 심포지엄(2001), 부에노스아이레스 제3회아베자네다공원 국제조각 심포지엄(2000), 부에노스아이레스《Exposición Grupal de la Asociación Artes Plásticas Coreana》(1998), 부에노스아이레스 라 칸델라리아 갤러리 그룹전(1995), 서울시립미술관의 《'95 한국여성미술제》(1995), 멕시코 시티 국립현대미술관 그룹전(1992, 1991) 등이 있다. 김윤신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Stranieri Ovunque - Foreigners Everywhere》(2024)에 초청받아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김윤신의 작품은 다수의 공공 및 사립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표 소장처로는 멕시코 시티 소재 국립현대미술관, 부에노스아이레스 현대미술관, 아줄 로페즈 클라로 미술관, 로사리오 중앙우체국, 베이징 국제조각공원,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한원미술관, 한국토지주택공사, 서울아산병원, 경기도 광주 스페인조각공원, 익산 중앙체육공원 등이 있다.